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츠하크 라빈 (문단 편집) ==== 총리 1기 ==== 1974년에 골다 메이어 총리가 [[제4차 중동전쟁]]에서의 실책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자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 본토 태생으로는 최초로 총리가 되었으며, 노동당의 당수를 지내기도 하였다. 라빈은 전임 총리들과 달리 지난 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큰 피해를 입힌 이집트에게 전향적인 태도로 나왔고 역시 이스라엘과의 화평으로 외교정책을 전환한 이집트 대통령 [[안와르 사다트]]와 1975년 시나이 잠정 협정을 맺었다. 협정 결과 이스라엘은 [[수에즈 운하]]에서 약 30km 동쪽으로 철수하는 대가로 이집트는 이스라엘 선박의 [[수에즈 운하]] 통과를 허용했다. 1976년에는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에게 납치당한 [[에어 프랑스]] 항공기 승객들을 구출하기 위한 대테러 작전인 [[엔테베 작전]]을 성공적으로 치루기도 했다. 그러나 내각 불신임 결의 문제로 [[하레디]] 정당과 갈등을 빚었고,[*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한 이유가 황당한데, 당시 신형 전투기였던 [[F-15]] 4대가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들어왔을 때, 들어온 날이 하필이면 [[안식일]]이라 공군이 안식일 규율을 깨트렸다(...)는 이유에서였다.] 더군다나 [[오일쇼크]]의 여파가 이스라엘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치면서 물가와 실업률은 크게 오르는 등 이스라엘의 경제는 침체에 허덕였다. 자연히 정국은 불안정했고 타개책으로 1977년 조기 총선을 치뤘으나 미국의 [[지미 카터]] 행정부와 관계가 냉각된 끝에 총선에서 참패했고 여기에 미국 대사 시절 미국 은행에 자신과 부인의 계좌를 개설했다는 사실이 밝혀져[* 당시 이스라엘 환전법 상으로는 사전 허가 없이 개인이 외국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불법이었다.] 논란이 되자 결국 총리직에서 사임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